문형배의 탄핵 속도전, 여론 역풍에 급제동···'윤대통령 조기탄핵' 구상 흔들
이영민 | 입력 : 2025-02-04
[뉴스줌=이영민기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의 헌재가 고도의 ‘정치 관여’ 논란을 일으키며 여론의 역풍을 불러왔다. 특정 정파의 요구에 발맞춰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관련 권한쟁의심판 ‘속도전’을 벌이다 정치 개입 비판을 자초한 것이다. 헌재가 3일 마은혁 관련 권한쟁의심판 선고를 전격 연기한 것은 정치편향 논란 및 적법절차 훼손과 관련한 민심 악화를 의식한 조치이다.
◇문형배와 헌법
2시간짜리 엉성한 비상계엄이 가져다준 효과가 있었다. 국민은 헌법, 3권분립,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세계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로 나뉘어 생사를 건 승인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투 캠프(two camps)’ 간 체제전쟁이 남북 간엔 물론 국내에서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이해하게 됐다.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삼는(헌법 전문·제4조)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이미 좌파의 숙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됐다. “좌파는 과거처럼 국가를 향해 화염병 던지는 체제 밖 저항자가 아니라, 입법부·법원·헌재를 장악하고 넥타이 맨 체제의 소유자가 됐다”(김행범 부산대 교수, 페이스북).
문형배 권한대행. 그의 생각은 일련의 X 글에서 확인된다.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2010년 5월 16일). “한국은 북한이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더욱 많은 대북 원조를 제공해 관계 개선해야”(2010년 10월 15일). 전향하지 않은 공산주의자이자 김일성주의자인 신영복에 대한 오마주도 엿보인다. “신영복 교수 책은 거의 읽은 것 같은데 돌아가셨구나! 변화와 창조는 변방에서 일어난다는 그분 말씀에 공감했다”(2016년 1월 16일).
문 대행의 블로그에는 헌법 가치와는 겉도는 통일관과 대북관이 드러났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2010년 9월 11일) “남북한은 공통성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별개의 독립 국가….”(2022년 6월 29일)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재의 정치행위
헌법재판소나 재판관은 정치행위를 해선 안 된다. 헌법 제112조 2항엔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정치 관여 금지’를 못 박았고, 헌법재판소법 제9조에도 똑같은 조항이 있다. 헌재와 재판관의 정치 관여 금지는 ‘정언명령’이다. 하지만 지금 헌재에서는 정치 관여, 특정 정파를 향한 선택적 헌법 해석과 법 적용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중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헌재의 ‘민주당 퍼스트’ 관념과 그를 위한 선택적 속도전이다.
헌재는 “탄핵심판은 재판관 개인 성향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민주당 정치일정에 짜 맞춘 행보로 헌법기관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재 재판관 후보를 임명 보류한 것과 관련해 우원식 국회의장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을 한덕수 탄핵 정족수 관련 심판보다 먼저 처리하려 했던 건 심각한 절차적 하자다.
헌법재판관 ‘국회 몫’ 3인의 선출권한은 ‘국회’라는 합의제 기관이 가진다. 그런데 이번 심판청구는 국회 본회의의 의결 없이 우 의장 1인이 임의로 한 것이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공론화한 것은 이인호 중앙대 교수였다. 이 교수는 “권한쟁의심판청구의 청구인은 국회인데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우 의장이 독단으로 심판청구를 한 것은 각하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문 대행이 기를 쓰고 조기 임명하려 했던 마은혁은 1987년 창립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의 핵심 조직원이었다. 인민노련 창립선언문에는 “미국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 2000명 학살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한국노동당 창당에 합류했고,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 정책국장을 지냈다.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2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기 전까지 마은혁은 오랫동안 반체제 노동·정치운동에 관여했다.
◇탄핵심판과 여론
헌재는 마은혁 없는 8인 체제 아래에서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 심리를 잘 끝냈다. 굳이 논란을 무릅쓰며 마은혁 임명을 추진해 9인 체제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마은혁 임명 속도전은 결국 재판관 보·혁 구도를 탄핵 인용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또 하나의 정치행위였다.
이런 와중에 헌재가 3일 마은혁 임명 보류 권한쟁의심판을 선고 2시간 전에 아무런 설명 없이 연기한 것은 졸속재판이라는 따가운 지적을 의식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헌재는 통상 주요 사건 선고 며칠 전에 미리 결정문을 써두는데 그대로 선고하지 못할 정도로 심리가 부실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대통령 탄핵은 정치 과정이다. 탄핵심판은 결국 여론과 민심의 영향을 받는다. 8년 전 헌재의 박근혜 탄핵심판 결과는 ‘8(인용) 대 0(기각)’이었다. 후일 취재한 결과 재판관 초기 의견은 ‘5(인용) 대 3(기각)’이었는데, 80%를 넘나드는 탄핵 찬성 여론과 연인원 수백만 명을 동원했던 광장의 함성에 질려 나머지 3명이 현실과 타협했다. 당시 박근혜 지지율이 한 자리 대였던 상황에서 기각 의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윤석열 탄핵심판과 관련한 재판관들의 초기 판단 또한 ‘5(인용) 대 3(기각)’으로 나뉘었다는 정황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여론의 움직임은 박근혜 탄핵 당시의 그것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여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여론조사가 이어지고 심지어 윤석열 지지율이 40%를 넘나든다. 탄핵 기각 의견을 가진 재판관들이 의견을 철회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부장판사를 지낸 한 법조인은 “탄핵 인용 의견을 가진 재판관들이 기각 판단을 하는 다른 재판관들을 회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에 문 대행이 마은혁 임명 속도전을 벌이다 스텝이 꼬이게 됐다”라고 평했다.
◇탄핵전쟁 분수령
3일 헌재의 마은혁 권한쟁의심판 선고 연기로 탄핵을 둘러싼 체제전쟁은 분수령을 맞게 됐다. 법원 내 좌파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헌재를 선점한 데 이어 마은혁까지 끌어들여 ‘좌파 생활권의 확장’을 꾀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윤석열 조기 탄핵 구상이 흔들리면서 탄핵전쟁의 양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더 이상 일부 재판관들의 정치행위로 오염돼선 안 된다.
■용어설명
‘투 캠프(two camps)’는 세계를 두 개의 진영 간 대결로 보는 것. 20세기 중후반까지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투 캠프로 봤고, 21세기 들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대립으로 보고 있음.
‘생활권의 확장’은 원래 히틀러 시대 독일의 체계화한 영토 확장을 꾀하는 이념 및 정책. 전쟁과 홀로코스트 등 다른 종족 학살의 명분으로 활용되며 전체주의자들의 영향력 확장 구호로 나타남.
■ 세줄요약
문형배와 헌법 : 대한민국은 현재 ‘투 캠프’ 간 치열한 체제전쟁 중.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좌파의 숙주로 전락할 위기. 좌파 문형배 체제의 헌재가 헌법이 금한 정치편향 논란을 초래하다 여론과 민심의 역풍을 불러.
헌재의 정치행위 :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헌재와 재판관의 정치행위를 금함. 하지만 문형배 체제의 ‘민주당 퍼스트’ 입장과 선택적 속도전이 발생하고 있어. 국회 의결 없는 마은혁 권한쟁의심판청구는 각하사유임.
탄핵심판과 여론 : 문형배가 절차적 하자에도 불구 ‘마은혁 임명 속도전’을 펼쳤지만 여론 및 일부 재판관들의 반대로 스텝이 꼬임. ‘좌파 생활권의 확장’을 꾀하려던 계획은 틀어졌고 탄핵전쟁은 분수령을 맞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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