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다시 돌아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덕영 | 기사입력 2026/06/04

오세훈, "다시 돌아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덕영 | 입력 : 2026-06-04

 

 

▲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이 6월 4일 서울시청 로비에서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12대 4. 광역단체장 당선자 수로만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2022년 지방선거 때 5대 12의 참패를 그대로 되갚아 준 셈이기도 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숫자의 이면엔 언제나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그 숫자 뒤에는 후보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욕망과 투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원래 15대 1이거나 14대 2로 이겼어야 했다’라는 걸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지도부는 계엄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고, 윤 다시 세력과 절연도 하지 않은 채 선거를 시작했다. 한동훈 제명과 친한파 제거는 마이너스 정치의 끝판왕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이었다. 거의 모든 조사에서 ‘정권 안정’ 프레임이 ‘정권 견제’ 프레임을 압도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의 민심마저 ‘디비졌을’ 때만 해도 15대 1이 기정사실로 되는 듯했다. 심지어 국무총리까지 지낸 천하의 김부겸 후보 아니었던가.

김부겸‧김경수‧정원오, 뼈아픈 세 개의 패배

여론조사도 출구조사도 민주당의 승리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전북에서 내친 김관영 후보가 당선되면 어쩌지’ 걱정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6‧3선거 개표 결과 여론조사는 물론 출구조사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전북은 민주당이 총결집하며 이원택 후보가 10%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싱겁게 이겼다. 반면 초박빙으로 발표됐던 대구는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무려 8.86%포인트 앞서며 개표가 마무리됐다. 여론조사에도 출구조사에도 잡히지 않았던 보수 대결집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경남은 특별히 극적인 과정 없이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3%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김경수 민주당 후보를 앞질렀다.

문제는 서울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는 정원오 51.4%, 오세훈 46.0%였고, 대부분 5.4%포인트 차이면 무난하게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새벽 대반전이 일어났다. ‘어게인 2010’이 실현되는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내내 앞서던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새벽 역전’을 허용했다. 오세훈 47.43%, 한명숙 46.83%로 2만6412표 차이로 당선했다. 이번 6‧3선거에서는 오세훈 49.15%, 정원오 48.13%로 표 차이는 5만3465표였다.

 

승리는 결과로 남고 패배는 이야기로 남는다. 사람들은 주식에 투자할 때 이익 실현의 기쁨보다 손절의 아픔을 더 오래 기억한다. 큰 은혜는 쉽게 잊고 작은 상처는 오래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나.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라고 했다. 선거도 그렇다. 모든 승리는 서로 닮았고, 패배는 제각각 나름으로 아픈 의미를 갖는다.

김부겸의 패배는 보수의 심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던 결정적 기회를 잃은 역사적 패배다. 김경수의 패배는 시대정신과 전략적 프레임 설정에 실패한 아주 게으른 패배다. 정원오의 패배는 민주당을 넘어 이재명 정부의 최전선을 뚫린 전략적 패배다. 민주당 입장에서 이 세 개의 패배는 각기 다른 이유에서 뼈아프다.

이들 패배는 여론조사의 울타리를 째고 나온 야생성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낙관론자들이 득시글한 캠프는 야생성의 징후조차 읽으려 하지 않는다. 영국 작가 G.K. 체스터튼의 말처럼 “정확성은 분명하지만, 부정확성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대중의 야생성은 회귀본능을 갖고 막판에 가서야 발톱을 드러낸다. 전략이란 마지막 순간까지 민감하게 이 흐름에 대응하는 것이다.

 

9대 4대 1. 14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또한 숫자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이긴 것 같지만 이면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의 완패다. 원래 13곳이 민주당 현역이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울산과 충남, 평택의 패배는 야생성이 충청을 넘어 경기까지 확산했음을 뜻한다. 부산 북구갑의 무소속 한동훈의 승리는 이후 정계 개편 태풍의 씨앗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의 3등 낙선과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은 이후 벌어질 정계 개편 시나리오의 방향을 상당히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8월 당권투쟁 ‘사생결단’ 예고

8월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아주 첨예한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시장과 경남도지사 선거 패배는 양해할 수 있어도, 당 지도부는 전선의 패배이자 전략적 패배인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더해 보수의 분열 속에서도 ‘대통령의 남자’ 하정우 후보를 밀어내고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당선된 것, 선을 넘은 네거티브 선거전을 치른 조국 후보와 김용남 후보의 난타전 끝에 결국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가 무려 6%포인트가 넘는 득표 차로 당선된 것은 차기 당권 도전이 유력시되는 정청래 대표의 입지를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정 대표는 지방선거의 명목적 승리를 강조하며 서울시장 선거와 보궐선거 패배 의미를 축소하려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선거 이전부터 당대표 출마가 예상되는 김민석 총리를 중심에 두고 당권파에 각을 세워 온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의 더욱 거센 공세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 대표가 공들인 하정우 후보의 패배, 김관영 후보를 제명한 전북 공천 파동, 치열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평택을 김용남 공천 등은 당 지도부가 오롯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에서 애초에 세웠던 압승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정치적 패배로 귀결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너무 쉬운 선거판에 취한 나머지, 시대정신과 전략적 프레임을 제대로 설정하지 않았다.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라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유리한 후보들의 의제 회피 전략이 과연 대전환기 선거에 유효했을까.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지방정부의 역할을 재규정하고 이에 기반해 선거의 의미를 선명하게 규정했어야 함에도 이른바 민주당 發 전략적 의제는 어디에서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들은 너무나 유리한 구도 속에서도 후보들이 지역 이슈에 매몰돼 각개 약진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한 마디로 대중이 각인할 만한 공통의 슬로건이 없었다.

전략 프레임이 흐릿한 상태에서 ‘공소취소’ 이슈가 견제 심리를 자극했고, 보수가 결집하는 지렛대가 됐다. 여기에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제기한 삼성전자 이익 등에 대한 ‘국민 배당’ 논란, 스타벅스 사태에 대한 과도한 정부 개입 등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터져 나왔고 선거 중에 부동산값이 치솟으면서 문재인 정부 트라우마가 확산했다. 이 같은 이슈들은 지역별, 세대별 투표에 각각 다른 형태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이슈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이 매우 미흡했다는 점이다. 논리적 사실에 취한 진보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면서 대중의 인식을 압도한 것이 막판 보수 결집의 길을 열어줬다고 볼 수 있다. 여론에 잡히지 않은 오세훈 후보의 약진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이 깊다. 배당 문제와 스타벅스 과잉 대응은 2030의 더 가파른 보수화 경향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선거에서는 패턴화된 이성적 논리로 대중의 인식을 교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의 8월 당권 선거는 연임을 노리는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를 위시한 송영길, 이언주 등 ‘반청 연합전선’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김민석 총리의 입지를 좀 더 강화한 측면이 있다. 정 대표를 견제할 강력한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다. 임기를 마친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할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 의장의 경우 강훈식, 정성호, 김정관 등과 함께 김민석 후임 총리로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총리 후보 지명과 함께 민주당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합류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총선 공천권을 가진 당권 선거가 전례 없이 격렬할 것으로 보지만 이것이 분당 사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견고하다. 물론 당 지도부의 과정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 대한 아주 겸허한 성찰적 평가가 절대적이다. 이번 선거 평가가 민주당 갈등 폭발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發 보수 재편 시나리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번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까. 지금까지의 행태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특히 서울시장 승리를 상징화하려 할지도 모른다. 지난 이야기지만 장동혁 대표가 물러나고 개혁적 보수 비대위 체제로 선거를 치렀다면 국민의힘은 훨씬 나은 성적표를 받았을 것이다.

장 대표가 자리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선 제명당한 한동훈 후보가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의 강공을 막아내고, 정청래가 삼고초려한 ‘이재명의 남자’ 하정우 후보마저 제치며 위풍당당하게 살아왔다. 이번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전체를 통틀어 한동훈 후보가 가장 빛나는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한 당선자는 유권자들과 만나는 첫 선거를 매우 공격적이고 헌신적으로 치러냈으며 결과까지 만들어 냈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몸소 겪고 돌파한 셈이다. ‘길을 아는’ 특유의 얄미움을 넘어 ‘길을 걷는’ 경험과 용기의 프레임을 얻은 것이다. 그것도 부산의 유일한 민주당 지역구에서 값진 승리를 따냈다. 특히 한동훈 당선자가 득표한 42.97%는 박민식 후보가 득표한 15.77%와 확연히 대비된다. 이것은 앞으로 한동훈의 정치 행보에서 ‘미래의 보수’와 ‘과거의 보수’가 갖는 상징적인 숫자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음 총선을 전제할 때 한동훈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한동훈이 팬덤을 넘어 실제 득표력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협공을 뚫고 당선된 유의동 후보의 합류도 한동훈에겐 큰 힘이 될 것이다. 복당을 둘러싼 장동혁 대표와의 쟁투에서 내부 지원군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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